선비족의 뒤를 이어 고비사막 북쪽의 초원을 다스렸던 민족은 유연족이다. 유연은 기원후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초원에 국가를 건국하여 활동하였다. 3세기 전반에 선비족 연합체가 붕괴되고 우문부, 탁발부 같은 일부 선비 부족이 북중국으로 이주하였다. 비어버린 초원을 '칙륵'이라는 투르크 계통의 유목민족이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웠다.
유연이라는 국명은 4세기 전반 거록회라는 인물이 몽골 초원에 잔류하던 선비계 유목민들을 규합하면서 사용되었다. 이들은 여여나 예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유연의 남쪽에 국경을 맞댄 북위는 비하의 의미로 연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당시 화북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북위의 도무제는 4세기말 유연에 대하여 군사적 원정을 감행하여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압박속에서 유연은 제국으로 탄생할 수 있었는데 402년 사륜이라는 인물이 스스로 구두벌 가한(칸)을 칭하고 군주가 되었다. 유연은 이전의 유목국가와 마찬가지로 물자가 부족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중국의 물자를 원해 이들과 교류하려 했지만 북위는 유목부족 출신인 선비계열의 국가였기에 약탈과 협상을 동시에 구사하는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유연은 북위가 아닌 후진, 북연등과 화친을 맺고 남조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위의 거듭된 원정은 약탈경제로 유지되던 유연의 국가 경제에 타격을 주었고 지속적으로 유연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여 유연을 정치, 사회적으로 곤경에 빠트렸다. 유연의 세력은 빠르게 약화되었고, 투르크계 유목민의 이탈을 유발했다. 또한 522년 돌궐의 수령 투멘의 공격으로 유연의 아나괴 카간(칸)이 자살하면서 유연은 흉노와 같이 안정된 제국체제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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