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건너온 사람과 문명

도래인과 야요이 시대 기원전 300년 경, 한반도를 통해 일본 열도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금속제 도구를 사용하는 무리로 규슈 북부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들로 인해 농사와 금속도구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야요이인은 빠르게 일본 전역으로 퍼져 약 400년만에 혼슈까지 나아갔다.
이 시대를 이들이 사용한 토기가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 야요이 시대라고 부른다.
야요이 시대는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약 600년의 시간을 가르키며,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은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발전하게된다.


농경 사회가 나타난 야요이 시대의 큰 특징은 벼농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벼농사는 고도의 농사 기술과 집단 노동을 필요로 한다.
대규모로 관개 시설을 정비하고 사용하여 경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곡물 축적과 관개용수 통제 등을 통해 계급이 분화하고, 곳곳에서 집단 성립되기 시작했다.
소국가는 관개시설과 논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집단을 확장하였다.
대형화 된 집단, 즉 소국가 사이에서도 통합과 정복, 상하관계가 정리되면서 각지에서 이른바 국가라고 부를만한 형태의 집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가를 칭하며 문명의 도래지인 한반도,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사학계에서는 야요이시대에 갑작스럽게 규슈 북부에서 벼농사 유적이 나타난 것을 두고,
한반도 남부에서 이민자 집단이 바다를 건너와 정착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금속문화를 함께 가져와 퍼트렸으며, 이러한 야요이 문화는 규슈에서부터 백년 후에는 긴키지방, 기원전 즈음에는 간토지방, 3세기에는 도호쿠 지방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석기를 사용하던 일본에서 금속기는 커다란 기술적 충격이었다.

금속기라는 새로운 기술은 무력과 생산력에서 석기에 비할 수 없는 효율을 가져왔으며, 일본 열도에 전달된 문명을 대표하는 기술이었다. 특히 청동으로 제작된 제기는 소국가 지도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종교적 물건이기도 했다. 야요이인들이 규슈에서 서쪽으로 퍼져나가면서 기존에 일본에 살아가던 조몬인들은 금속기를 가진 야요이인들에게 무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또한 채집과 수렵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농경 사회의 생산력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며 조몬인들은 야요이인들에게 천천히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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