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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일본사] - 고대 일본 소국의 형성과 통합: 히미코 여왕의 야마타이국

by Timemapcatographer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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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 소국의 형성과 통합: 히미코 여왕의 야마타이국

야요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열도에는 벼농사가 보급되었다.

농업의 강력한 부양력을 바탕으로 집단이 대형화되고, 금속기의 사용으로 무력집단이 탄생하면서 집단 내부에서, 집단과 집단에서 투쟁과 병합이 반복되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집단은 소국을 칭하게 되었고 그 정점에서 정치적 지배자 왕이 탄생하였다. 다만 이 당시의 지도자는 현재의 군 단위의 영토만을 영위하는 촌락 공동체의 지도자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국가를 고대국가와 구분하여 ‘소국’이라고 칭한다.

 

이 시대에 소국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많이 없으나, 사서에 남은 소국이 있다. 2세기 말 존속했던 야마타이국이다. 야마타이국은 히미코라는 여왕이 다스린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사서 <삼국지: 위지 왜인전> 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왜는 본디 남자를 왕으로 삼았으나, 70-80년이 지나 난이 있어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여 오랫동안 서로 싸웠다. 이내 한 여자를 왕으로 세우니 이름을 히미코라고 한다. 

히미코 여왕은 일종의 주술사로 신정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였다. 30여개의 소국을 영향력하에 두고 일종의 연맹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이 세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 본기에 따르면 아달라 이사금 20년 173년,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교류한 사실 역시 <후한서: 동이전>에 남아있다. 히미코 여왕은 대부 ‘난승미’를 보내어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했고, 후한 광무제는 한위노국왕이 적힌 금으로 만든 도장, 조서를 받았다. 이는 중국의 조공질서체계에 편입됨으로서, 일본 내에서 권위를 세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친위왜왕이라는 칭호는 일본 내 타 세력에 대해 종주권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히미코는 야마타이국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나아가 일본 내 다른 국가세력들에 대해서도 권위를 세웠다.

야마타이국처럼 소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기원 전후 시기에 일본 전역에 약 백여개국이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왕으로 자처하고 일정 지역을 다스리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런 소국들이 서로간의 상하관계를 정하고 정복과 통합을 반복하면서 이른바 대왕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지도자가 나타나는 것은 조금 더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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