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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일본사] - 고다이고 천황과 남북조시대

by Timemapcatographer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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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고 천황과 남북조시대

 

아시카가 타카우지와 닛타 요시사다 등의 활약으로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고다이고천황은 코우곤천황을 퇴위시키고, 코우곤천황이 서명한 칙서는 물론 

전대에 행해진 모든 관직의 무효를 선언한다. 

그리고 천황의 친정체제 아래 공가(公家)와 무가(武家)를 합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시행한다. 

종래의 토지소유권을 무효로 하고, 새롭게 토지소유권을 신청 받는 등 천황친정체제 기틀 마련에 힘쓴다.

그러나 공가만을 중시하고,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등으로 인해 

무사들과 농민들의 불만이 커져간다.



이러한 불만들을 감지한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1335년 가마쿠라 막부의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가마쿠라로 출병하게 된 것을 기회로 조정에 반기를 든다.

 

1336년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를 수중에 넣고, 

고다이고 천황이 요시노로 패주하게 되면서, 

고다이고 천황의 친정은 3년 만에 막을 내린다. 그리고 같은 해, 아시카가 다카우지에 의해 

교토에서 코우묘 천황이 옹립되면서, 2명의 천황이 존재하는 

이른바 남북조시대가 시작된다.

요시노 고다이고 천황의 남조와 교토 코우묘천황의 북조의 대립은, 

1338년 아시카가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하면서 무로마치막부가 열리고, 

고다이고 천황의 서거 등으로 인해 북조의 우세로 기우는 듯 보였다. 

그러나 토우후쿠, 칸토우, 큐슈지역을 중심으로 남조의 강한 저항이 계속되었고, 

신막부의 권력마저 아시카가 타카우지와 그의 동생 아시카가 타다요시로 분열되면서

전란은 점처럼 수습되지 못하고 60년 가까이 계속된다.

 

그러한 가운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남조와의 융화를 목적으로 

임제종의 승려 무소우 소우세키의 제안을 받아들여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교토에 텐류지를 건립한다.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 대에 이르러 무로마치 막부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남북조사이의 평화의 기운도 높아진다. 그리하여 1392년 남조의 고카메야마 천황이 

요시미츠의 초청에 응하여 교토로 들어가, 북조의 고코마츠천황에게 양위하는 형태로 

남북조의 통일이 실현된다. 

 

통일조건은 남조와 북조가 교대로 황위를 계승한다는 것이었지만, 

막부는 이 약속을 어기고 남조계의 황족을 모두 출가 시켜서 후대가 끊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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