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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사

[이집트사] - 프랑스의 이집트 침략과 점령

by Timemapcatographer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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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이집트 침략과 점령

프랑스의 이집트 침략과 점령은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집트를 침공하며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표면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권위를 회복하고, 이집트를 지배하던 맘루크 세력을 억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자신이 신, 무함마드, 그리고 쿠란을 맘루크들보다 더 존중한다고 주장하며, 이집트 내 모든 사람들이 지적, 도덕적 우수성에 따라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후, 나폴레옹은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동맹임을 강조하기 위해 점령지의 마을과 도시들에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 공화국의 깃발을 함께 게양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인들은 프랑스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1798년 피라미드 전투(엠바베 전투)에서 맘루크 세력의 수장인 무라드 베이와 이브라힘 베이의 군대가 패배하자, 카이로 시민들은 맘루크들의 집을 약탈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카이로에 시의회 형태의 행정기구를 세웠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나폴레옹의 독재적 통제 아래 있었다. 이후 나일 전투에서 영국 해군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면서 프랑스군의 상황은 악화되었고, 이집트 내 불만도 고조되었다. 1798년 10월 22일, 주택세 부과를 계기로 카이로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으며, 프랑스군은 알자르 모스크에 기병을 주둔시켜 이집트인들의 반감을 더욱 키웠다.

1799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 나폴레옹은 시리아 원정을 감행했으나 실패하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아부키르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크게 격파하고, 프랑스를 떠나 클레베르 장군에게 이집트의 통치를 맡겼다. 그러나 클레베르는 프랑스의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오스만 제국과 협정(1800년 1월 24일)을 체결하고 이집트에서 철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영국의 개입으로 협정이 무산되었고, 프랑스군은 다시 전투를 준비했다.

 

클레베르는 1800년 4월 카이로의 반란을 진압했으나, 1800년 6월 14일, 시리아에서 온 술레이만 알할라비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후 메누 장군이 프랑스군을 지휘했으나, 1801년 3월 영국-오스만 연합군이 아부키르에 상륙하고, 5월에는 카이로가 포위되었다. 결국 프랑스군은 1801년 8월 항복하고 철수했으며, 이는 프랑스의 이집트 점령의 종식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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