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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로마노프 왕조

[러시아사] - 알렉산드르 2세와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 팽창

by Timemapcatographer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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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 알렉산드르 2세와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 팽창

 

러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르 2세의 통치기에 아시아로의 진출을 황장하여 진정한 식민지 강국으로 변모했다. 그전에도 이미 폴란드와 코사크 인 등 다양한 다민족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확대를 통해 더욱 제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에 다른 유럽 열강들은 러시아의 영토팽창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는 곳은 아시아로 캅카스, 중앙아시아, 극동 지역이였기에 열강은 효과적으로 그 팽창을 저지 할 수 는 없었다. 또한 차르 정부는 알래스카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나 이는 1867년에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팔아 넘겼다. 

카프카스 지역의 현재 지도

 - 카프카스 지역과 러시아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조지아(그루지야)가 러시아에 종속되고, 페르시아와 투르크로부터 카프카스 지역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러시아는 카프카스 산맥 남부를 완전히 차지하였다. 이는 카프카스 전역이 차르의 지배하에 들어왔음을 말한다. 그러나 카프카스 산맥에 거주하는 수많은 산악부족들은 이곳이 차르에 영역에 들어왔음을 알리도 없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러시아 제국의 권위는 그저 명목상의 권위에 불과했고, 전혀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러시아 제국은 이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의 목표가 된 부족은 체르케스인, 압하자인, 오세타야인, 체첸인 등이었다. 이들을 향한 러시아 제국의 공격은 181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 교도들로 자신의 자유와 신앙을 위해 지하드를 선포하고 연합하여 러시아에 대응했다. 이들의 저항은 완강했고, 러시아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평화"를 얻는데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렸다. 

1857년에 시작된 바랴틴스키의 러시아군은 신형 라이플을 사용하여 카프카스 지역에 공세를 취했다. 뒤이어 1859년에 바랴틴스키는 러시아 제국에 저항해온 카프카스 저항운동의 지도자 샤밀을 사로잡았다. 그는 카프카스의 정치적, 군사적, 정신적 지도자였기에 그가 사로잡히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카프카스 저항운동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이로인해 많은 이슬람 교도들이 투르크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중앙아시아 지역

 

 -중앙아시아 지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공세는 알렉산드르 2세 대에 진행되었다. 1865년과 1876년 사이에 이 지역에 대한 과감한 군사원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10년 동안에 러시아 인들은 킵차크 칸국의 후예인 중소 칸국들을 정복했다. 여기에는 코간드 칸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이 포함된다. 그리고 1881년에는 카스피해 너머 지역을 병합했다. 

러시아가 황폐한 중앙아시아를 점령하고 병합한 이유에는 경제적 이유가 있었다. 시베리아의 모피와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의 면화는 매력적인 자원이었고, 그곳의 인구는 러시아의 제조품을 위한 시장이었다. 나아가 중앙아시아를 정복해 러시아 국경지대를 수비하고 국경을 안정시킨다는 안보상의 논리 또한 존재했다. 카프카스와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 역시 러시아 제국은 동화보다는 통제와 시장의 확보 목적을 우선에 두고 통치하였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영토확장

 -시베리아 지역과 러시아

시베리아의 넓은 땅은 부드러운 금이라 불리는 모피의 생산지였다. 차르는 상인과 코사크들을 이용해 넓은 땅을 제국에 합병시키려하였고, 경제적 이득에 따라 상인과 일부 귀족, 코사크인은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시비르 칸국이 러시아군에 의해 멸망하자 더 이상 동쪽에는 러시아의 진격을 막을 존재가 없었다. 시베리아의 러시아 국경은 1689년 네르친크스조약 이후 알렉산드르 2세때 까지 변하지 않았다. 1847년 동 시베리아의 군인총독으로 임명된 러시아의 무라비요프 백작은 아무르 강 유역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팽창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중국이 영국, 프랑스랑 전쟁을 벌이고 반란으로 분열된 상황을 이용해  매우 유리하게 조항을 청과 조약을 맺었다. 

 중국은 1858년 아이훈 조약을 통해서 아무르 강 좌안을 러시아에 넘겨야했고, 1860년에는 베이징 조약을 통해 우수리 지역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 제국의 국경은 태평양에 닿았고, 연안지역에는 러시아 군인들과 이주민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연안에 1860년 건설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의 지배"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피는 시베리아로의 영토확장에 가장 중요한 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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