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구조와 성립
유럽의 절대왕정은 유럽의 사회가 봉건시기를 탈피하여 근대사회 성립의 초기단계이다. 절대왕정국가는 봉건 제후들에게 나뉘어져있던 권력을 왕을 중심으로 모으고 국가를 통일시켜 행정, 사법, 군사적 측면에서 중앙집권화를 이룬 국가를 말한다. 국가 통일과 중앙집권으로 이룬 왕권은 매우 강력했다. 정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전제정치에 가까웠다. 그러나 절대왕권 역시도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아니었다. 절대왕권 역시 귀족이나 의회, 세습 관료집단에 의해 견제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절대왕권의 기준이 된다.
사상적으로는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절대왕정은 관료제와 상비군의 존재를 통해 강력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군주의 의사를 이행할 수 있는 관료집단과 언제든 왕의 반대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언제든 동원 가능한 상비군의 존재는 왕권 강화의 중요한 첫걸음 이었다.
그러나 관료제와 상비군은 군주로 하여금 엄청난 지출을 야기시켰다. 군주는 자신의 후원인으로 경제적으로 새롭게 떠오른 부르주아를 정치적 파트너로 삼았으며, 중상주의 정책을 펼쳐 조세제도와 국가 재원을 증대시켰다. 보호관세를 설치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증대시켜 이익을 얻는 정책으로 국부의 증대를 목표로 하였고, 이를 통해 국가 통일과 국가 권력의 증대를 이루고자 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절대왕정은 약 100년에 걸쳐 성립되었다. 종교전쟁을 종식시키고 프랑스 내에서 신교도를 인정한 앙리 4세를 거쳐서 루이 13세가 재정을 확대하고, 루이 14세를 거치면서 절대왕정이 성립되었다. 앙리 4세의 낭트칙령은 신교도의 자유로운 활동을 인정했고, 이는 국가 재정의 증대를 가져왔다. 루이 13세 대에 재상을 지낸 리셜리외는 현실에 입각한 정치를 통해 왕권 강화와 국력 증대를 이뤄냈다. 리셜리외의 후임 재상인 마자랭은 루이 14세의 보좌를 맡아 귀족세력의 위협을 분쇄했다. 마자랭이 죽자 직접 통치를 맡은 루이 14세는 콜베르 같은 재상을 등용하여 국내 공업을 일으키고 중상주의 정책을 펼쳐 본격적인 중앙 집권적 절대왕정을 실현했다. 루이는 태양왕으로 불렸으며 죽을때까지 절대왕권을 누렸다.
루이 14세는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상비군을 편성하였는데, 약 60만에 달하는 병력을 운용하였다. 또한 왕권의 강력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왕족과 귀족을 구분 짓는 예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은 강력한 왕권 하에서 귀족세력을 억누를 때만 가능한 것들이었다.
귀족세력이 왕권을 견제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의 요청이 있다면 시민계급과 성직자, 귀족의 의견을 대변하는 삼부회가 소집될 수 있었으나, 왕권이 강력해진 상황에서 삼부회는 더 이상 의미를 잃게된다. 루이 13세 즉위 직후 소집된 1614년의 삼부회 이후 170년간 삼부회는 소집되지 않다가 프랑스 혁명기인 1789년에 다시 소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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