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나라7 [한국사] - 고조선의 발전과 한제국의 조선침략 고조선은 춘추전국시대에 조선으로 이주해온 중국 유이민으로부터 받아들인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주변에 산재한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또한 관료제도를 정비하고 북방의 흉노와 동맹을 맺으면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나갔다. 그러던 중 기원전 128년 예족의 통치자인 남려가 28만의 백성을 이끌고 요동에서 한나라에 복속되길 청했다. 한은 이를 받아들여 요동에 창해군을 설치하고자 했으나 곧 주변 주민들의 저항으로 폐지되었다. 한나라가 조선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자 이를 두고 조선의 지배층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고조선 내 중심세력이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고, 동시에 고조선 내 중심세력이 영향력을 잃자 한나라는 흉노와 조선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조선으로.. 2022. 8. 26. [중앙아시아사] - 동호의 후예, 유목민족 선비족 [중앙아시아사] - 동호의 후예, 유목민족 선비족 본디 선비는 동호에 속한 부족이었다. 그러나 흉노족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받고 동호는 두 갈래로 나뉘어 이주하였는데 이 두갈래가 오환과 선비로 나누어졌다. 눈강 상류의 산악지역으로 들어간 동호는 선비족이 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다. 발음의 음가값이 [세르비 : Servi]에 가까웠기에 기록에 선비로 옮겨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1세기 중반 선비는 오환이 한나라의 영향권 아래의 지역으로 이주하자 오환 거주하던 초원지대를 자신들이 채우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동으로는 내몽골에서부터 서로는 주천과 동황에 이르기는 넓은 영역을 관할하였다. 이는 곧 선비족이 중국 북변에 넓게 분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비족은 기본적으로는 후한의 울타리로서 오환 편에 서서 북흉노의 공격.. 2022. 4. 6. [중앙아시아사] - 유목민족 오환의 등장 [중앙아시아사] - 유목민족 오환의 등장 유목민족 오환의 이름은 본디 동호였다.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흉노의 선우 묵특의 공격으로 동호가 근거지에서 쫓겨나 이동하였는데, 이들이 도망하여 자리잡은 와환산과 선비산에서 살게 되어 오환과 선비가 생겨났다. 이 기록을 따르면 기원전 3세기 말 몽골 초원 동남부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이 흉노 묵특의 공격으로 동북쪽으로 이주하면서 싱안링 상맥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세력이 바로 오환이 된다. 한나라 한무제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당시 랴호허 유역까지 남하해있던 오환을 상곡, 어양, 우북평, 요동, 요서등 5군으로 나누어 거주시켰다. 그리고 관직으로 호오완교위를 임명하여 이들을 관리, 감독하여 힘을 키우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환의 수령들에게 연 1회 한나라.. 2022. 4. 5. [중앙아시아사] - 중앙아시아와 한나라, 타림분지의 국가들 [중앙아시아사] - 중앙아시아와 한나라, 타림분지의 국가들 중앙아시아의 서부인 서-투르키스탄 지방은 일찍부터 서쪽의 지중해 문명과 접촉했고, 기원전 6세기 경에는 문헌에 등장하며 역사에 등장한다. 그에 비해서 동쪽 투르키스탄의 여러 도시들은 비교적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이 늦다. 비교적 정확하고 자세한 문헌은 동쪽의 흉노가 발흥하여 묵특 선우 이후에 흉노가 몽골 초원과 서역을 장악하자 한나라가 이에 대응하여 외교, 군사적 작전을 펼칠 시기였다. 기원전 176년에 흉노의 묵특 선우는 한나라에 보내는 서신에서 누란, 오손, 오걸 및 그 주변 26개국을 모두 흉노의 속국으로 삼았다고 보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당시 흉노가 타림분지 주변의 크고 작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모두 속국으로 삼았고, 한나라를 둘러 .. 2021. 5. 4. [중앙아시아사] - 흉노와 한의 관계변화(호한야선우와 왕소군) [중앙아시아사] - 흉노와 한의 관계변화 한과의 전쟁이 끝난 뒤인 기원전 60년, 허려권거 선우가 사망하면서 흉노는 정치적 혼란과 분열에 휘말렸고 곧 내전으로 격화되었다. 그러나 곧 내전은 수습되었고 흉노의 우현왕이던 악연구제가 흉노선우를 계승하였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즉위에 반대한 흉노 귀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탄압을 받던 귀족들은 이대로는 당할 수 없다며 호한야라는 인물을 선우로 옹립하여 악연구제에게 대항하였다. 이로써 초원에는 모두 2명의 선우가 있었고 이는 곧 내전으로 다시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한야 선우의 세력이 승리하는듯 하였으나 호한야의 형인 질지가 그를 축출하면서 상황은 다시 급변한다. 형에게 선우자리를 찬탈당한 호한야는 몽골초원에 머물 곳을 찾지 못하여 결국에는 기원.. 2021. 5. 3. [중앙아시아사] - 흉노 제국의 대 한나라 전쟁 [중앙아시아사] - 흉노 제국의 대 한나라 전쟁 흉노와 한나라 무제가 참여한 흉노-한 전쟁은 중국 측의 일방적인 기록만이 남아 전하고 있다. 유목민족의 특성상 이러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흉노는 전형적인 유목국가로 글로 역사를 남기는 일에 매우 미숙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중국측의 기록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 사서를 기준으로 역사를 살펴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인식하지 않고 사료 그대로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 고조 유방이 흉노 때문에 고생을 한 이후 한 무제는 흉노에 대하여 칼을 갈고있었다. 흉노를 공격하기 위해 무제는 기원전 139년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한다. 이는 흉노의 후방을 공격할 세력을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2021. 4. 14. [중앙아시아사] - 흉노의 등장과 만리장성 [중앙아시아사] - 흉노의 등장과 만리장성 은주 이래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북방에 살던 여러 민족들은 주로 정주생활을 하며 보병을 기반으로한 전투를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로 넘어갈 무렵 계절적 이동을 하며 기마전을 수행하는 새로운 민족이 등장했다. 중원 사람들은 이들을 가르켜 호(胡)라고 불렀다. 이 호라는 명칭은 특별한 부족이나 국가를 가르키는게 아닌 유목적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넓은 범위를 가진 단어였다. 따라서 동호, 임호,누번, 흉노 등은 모두 호에 속하는 집단이었다. 최초의 유목국가였던 스키타이가 역사에 등장한지 3세기 정도가 지난 뒤 유라시아 동쪽에서도 최초의 유목세력이 국가를 이룬다. 역사서에 나타나는 처음 기록은 유명한 사가 사마천의 에서.. 2021. 4. 2.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