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조 페르시아의 이집트 침략
사산조 페르시아의 이집트 침공은 619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는 로마-페르시아 전쟁에서 사산조의 마지막 승리 중 하나였다. 이 침공은 618년 또는 619년에 시작되어 619년부터 628년까지 이집트가 사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 시기를 의미한다. 사산조의 왕 호스로 2세(재위 590-628)는 동로마 제국 황제 모리스를 암살한 사건을 구실로 전쟁을 시작하였고, 초기의 전투에서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614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어, 619년에는 이집트의 중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산조의 이집트 정복은 이전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 시대 이후 다시 이루어진 장기간의 지배를 의미했다. 그러나 622년, 동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반격을 개시하며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결국 628년 2월 25일, 호스로 2세가 전복되며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호스로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카바드 2세(재위 628년)는 즉위 후 사산조가 정복한 영토를 동로마 제국에 반환하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집트 주민들은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사산조의 침공에 거의 저항하지 않았다. 사산조의 지배 기간 동안, 당시 이집트에서 확산된 미아피시트주의(Miaphysitism)가 다시 공개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미아피시트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의 본성으로 보는 기독교 교리로, 동로마 제국의 공식 신앙인 칼케돈 신조(Chalcedonian Creed)와 대립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629년 헤라클리우스가 사산조를 몰아내고 이집트를 재탈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아피시트 신자들은 다시 박해를 받았고, 그들의 총대주교는 축출당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로마 제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이후 이슬람의 침공에 상대적으로 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사산조의 이집트 침공은 제국의 동부 국경에서 벌어진 복잡한 권력 투쟁과 종교적 갈등의 일환이었다. 비록 사산조가 한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내부의 불안정과 헤라클리우스의 반격으로 인해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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