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루크의 이집트 지배


맘루크( مملوك)는 무슬림 노예 군인이나 노예 출신 지배자를 일컫는 말로,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존재했다. 맘루크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소유된 자, 즉 피소유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주로 투르크, 슬라브, 조지아, 발칸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맘루크 왕조는 13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이집트와 발칸지역에 걸쳐 있던 국가로, 1250년 살라딘의 아이유브 술탄국을 무너뜨리면서 건국되었다. 본래 아이유브 술탄 앗 살리흐 (1240~1249)가 양성했던 군사 집단이었지만, 그의 사후 아이유브 왕조로부터 정권을 탈취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했다.
맘루크 왕국은 군사적 폭력과 권력 장악을 통해 이집트를 지배한 국가로, 이들의 통치는 큰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 맘루크 이집트의 시대는 바흐리 왕조(1250–1382)와 부르지 왕조(1382–1517)로 나뉘며, 바흐리 왕조는 132년 동안 25명의 술탄을 배출하였다. 초기 맘루크 술탄은 대부분 자유민이 된 노예들이었고, 그들은 점차 자치권을 얻고, 스스로도 군을 이끌며 술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술탄들이 새 왕조를 세우지 못하고, 대부분은 어린 후계자를 남겨놓고 죽거나 암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 술탄인 아이박은 알-살리흐 아유브의 미망인인 샤자르 알-두르와 결혼하여 시리아와 전쟁을 벌였지만 1257년에 암살당했다. 그 후, 술탄의 자리를 이어받은 쿠투즈는 몽골의 훌라구 칸 군을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물리쳐 시리아 대부분을 회복했으나 전투 후 바로 죽었고, 그 뒤를 이어 바이바르스가 술탄 자리를 차지하여 1277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다. 바이바르스는 이집트의 국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카이로를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카이로는 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나서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맘루크는 카이로에서 많은 건축을 남겼으며, 그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슬람 건축물 중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은 이집트의 인구, 경제, 정치 체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16세기 초까지 그 여파가 지속되었다.
1377년 시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은 이집트로 확산되어 바르쿠크와 베레케흐라는 체르케스인들이 정부를 장악했고, 바르쿠크는 1382년에 술탄으로 즉위하면서 바흐리 왕조는 끝나고 부르지 왕조가 시작되었다. 부르지 왕조 하에서 정치적 음모와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1399년에는 이집트를 침략한 티무르 렝크와 싸우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끊임없는 전염병이 이집트를 괴롭혔으며, 그 영향으로 경제와 사회가 큰 피해를 입었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맘루크 군을 물리치고 카이로를 점령함으로써 이집트는 오스만의 속국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의 맘루크를 여전히 지배층으로 두었지만,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남게 되었다. 이로써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 중기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맘루크는 군사적 기원과 높은 교육 수준으로 유명했으며, 문학과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개인 도서관을 가지는 것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고, 발견된 일부 도서관에서는 수천 권의 책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그들의 통치는 여러 내외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를 중요한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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