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5 [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중국사]- 저무는 영웅의 시대, 5호 16국 시대 (오호십육국 시대) 본디 중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 민족들이 살아가는 초원이 있었다.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북방에서 중원으로 이동한 유목민족 다섯민족을 5호라고한다. 흉노, 선비, 갈, 저, 강 등 다섯 유목민족은 사마씨의 진나라에서 일어난 팔왕의 난이 종결될 즈음 각자 독자 정권을 수립한다. 304년 산서 지방을 근거로 흉노의 유연이 대선우를 칭하며 한나라를 건국한다. 유연은 한고조 유방의 후예를 자처하며 漢(한)을 자처하였지만, 그 후대에 유요가 조로 국명을 고쳤다. 사천에서는 이웅이 성도왕을 자칭하면서 5호16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유목민족들은 삼국시대로 일컬어지는 후한말기부터 내전으로 힘이 약화된 한족의 영역인 이른바 ‘중원.. 2024. 7. 15. [중국사]- 후한의 멸망과 영웅의 시대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 전한과 후한이 중국대륙을 지배한 400년은 중국 고대의 완성이자 통일제국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오래가지 못했고 새로운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 후한의 멸망 이후 이어지는 위, 촉, 오의 3국의 시기는 분열의 경향을 강하게 보여준 시기였다. 이때에는 지방을 중심으로호족이 성장하였다. 지방세력인 호족이 성장하여 중원의 모든 지방에서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이러한 중원의 문화는 호족을 통해 주변 이민족에게 까지 미쳤다. 그리고 이러한 이민족을 국가 내에 포용한 한은 한족뿐 아니라 타민족까지 포함하는 제국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구조적으로 국가의 분열이 쉬운 형태로 운영되었다. 한나라때에는 유교를 국교화 하였다. 따라서 황제의 권력이 강화되었고, 지방에서는 사대부층이 성립되었다. 이 .. 2024. 7. 14. [중국사]- 전한의 멸망과 찬탈자 왕망, 후한의 등장 [중국사]- 전한의 멸망과 찬탈자 왕망, 후한의 등장 한 나라는 무제 이후 한나라는 천천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여러 황제를 거치면서 득세한 외척들은 결국 권력투쟁에 뛰어들어 나라를 좀먹기 시작했다. 전한 성제가 즉위한 후 황태후의 일족은 조정에서 중요 직책을 차지하였다. 전한의 혼란을 수습한 왕망도 이러한 외척 왕씨의 일원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입관하였다. 왕망은 순조롭게 승진하여 평제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들이면서 본격적 실권장악에 착수 하였다. 곧 왕망은 쿠데타를 일으켜 평제를 살해하고 스스로 가황제를 칭하였다. 동시에 참위설과 천재지변을 교묘히 이용하여 한을 대신할 사람이 왕망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수차례 추대를 사양하는 과정을 거친뒤 선양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서기 8년 황제의 자리에 올.. 2024. 7. 13. [중국사]- 진나라의 멸망, 한제국의 등장과 한무제 [중국사]- 진나라의 멸망, 한제국의 등장과 한무제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중국 역사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었다. 하, 은, 주 시기까지는 국가는 황하 중하류에 중심지를 두고 주변에 영향력을 끼치는 정도였고,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각 제후국의 영역이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그 지역 문화와 일체화 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점에서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주나라 시기의 권위회복 또는 권력승계가 아닌 새로운 시기의 도래로 봐야한다. 진 제국은 자신의 통치방식을 점령한 땅에 이식하여 통치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나라는 무리한 토목공사와 엄격한 법 집행 등에 사회불만세력이 속출하고, 내실이 다져지지 않은 채 급속한 통합을 이루었기에 사회가 위태로웠다. 진시황 사후 제국은 급속하게 무너져 .. 2024. 7. 12. [중국사] -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나라의 전국통일 [중국사] -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나라의 전국통일 중국 대륙의 패권을 잡기위해 전국에서 영웅이 할거하였다. 지역패권을 잡은 지역군벌들은 옆 지역의 세력을 흡수하기위해 노력했고 전국이 전쟁의 포화로 빠져들었다. 전국시대 전쟁이 계속 되면서 사회 곳곳에서는 불만이 쌓여갔다. 지역의 패자들은 지역의 재화를 모두 쏟아부어 전쟁에 나섰다. 그런만큼 많은 양의 물자가 전쟁에 소비되었다. 이러한 재화의 손실은 모두 생산계층인 농민이 부담해야했다. 또한 이전 시대에 비해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국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징병되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상인들 역시도 전쟁으로 상업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면서 종국에는 이렇게 계속되는 전쟁을 종식해야한다는 사회 각 계층의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국에.. 2024. 7. 11. [중국사] -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의 팽창 춘추 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기점은 주로 진나라가 기원전 453년 한, 위, 조의 세나라로 분열되는 것을 기점으로 잡는다. 서주의 왕으로부터 직접 제후로 봉해진 제후국 진이 내부의 하극상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명목상으로라도 남아있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였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는 오로지 강한 국력을 가진 자만이 전쟁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전국시대 군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세력내에서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권력을 군주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또 다른 제후국과의 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였다. 춘추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나오는 물산을.. 2024. 7. 10. [중국사] - 춘추: 패자의 시대 [중국사] - 춘추: 패자의 시대서주의 봉건제도는 혈연에 의한 관계와 결합된 사회제도였기에 제도 성립 초기에는 끈끈한 혈연관계로 꽤나 결속력이 강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관계가 멀어지고 혈연적으로 소원해지면서 통치체제 전반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였다. 왕위를 둘러싸고 각 세력간의 각축전이 진행되자 주나라는 12대 왕 유왕 때 멸망하였다. 유왕은 견융, 서이 등의 이민족을 동반한 반란군에 의해 죽고, 태자였던 백복도 살해당했다. 이민족 견융은 주나라 수도 호경에 눌러앉아 약탈을 벌였고, 제후들은 견융을 토벌하고 호경을 되찾았다. 그후 새로운 왕인 평왕을 옹립하고 황폐화된 도읍을 버리고 낙읍, 낙양으로 천도하여 동주시대를 열었다. 새롭게 천도한 주나라를 이전의 주나라와 구분하여 동주라고 부른다. 멸망한 .. 2024. 7. 9. [중국사] - 주나라의 등장, 서주와 봉건제 [중국사] - 주나라의 등장, 서주와 봉건제주나라는 상나라를 물리치고 새롭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국가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물리친 주나라의 왕 무왕은 황하의 지류인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해 상나라를 무너트리고, 중국 최초의 천자국을 건설하였다. 주나라는 기원전 771년 견융에 의해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를 서주, 옮긴 이후를 동주라고 구분한다. 상과 관련해서는 지극히 적은 문헌 기록과 갑골문만이 남아 있지만. 서주 시기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이 다량으로 확인될 뿐 아니라 상서, 주례등과 같은 유가 문헌 속 에서도 관련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바탕으로 복원된 주나라 사회는 '상주 혁명'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상과 사뭇 다른 모습을 띤다. 일단 상과는 달리 봉건제.. 2024. 7. 8. [중국사] - 중국사 최초의 국가 상나라와 청동기 문명 [중국사] - 중국사 최초의 국가 상나라와 청동기 문명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 경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이다. 마지막 수도의 이름을 따서 은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상나라 이전에 하나라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아직 전설속의 국가로 다루어지기에 타임맵 중국사에서는 실제 존재했다고 확인되는 상나라부터 시작한다. 상나라가 존재했던 시기는 사실상의 상고시기로 그 존재가 신화적 존재이기에 실존을 의심받곤 했다. 그러나 다행히 여러 증거가 나타나면서 상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 19세기 말까지는 전설상의 왕조로 추측했으나 1899년 발견된 갑골문이 발견되며 상나라의 존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시작된 하남성 안양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 상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의 궁전과 왕들.. 2024. 7. 3. [중국사] -중국 민주화 요구의 물결과 천안문 모든 권력은 인민의 것이다.인민은 잊지 않는다.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1989년 6월 4일, 넓은 광장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자유를 외치고 있습니다.그리고 곧 수많은 전차가 밀려들어 이 학생과 시민들을 밀어버립니다.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문화대혁명의 실패 이후 집권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하며 세계에 중국의 문호를 열고 경제 교류를 시행합니다. 이로인해 지식인과 대중을 중심으로 서구세계와의 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이들의 열망 또한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 4월, 중국 공산당에서 민주화의 상징격인 인물인 후야오방이 사망하면서, 그를 추모하는 인원들이 베이징 천안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죠. 후야오방의 죽음에 수많은 중국 대학생들은 화환을 바치며 천안문.. 2024. 6. 23. [러시아사] - 키예프 루시의 전성기를 이끈 블라디미르와 야로슬라프, Ярослав Владимирович Мудрый 키예프 루시의 전성기를 이끈 블라디미르와 야로슬라프 키예프의 4대 대공 스뱌토슬라프가 원정 도중 드네프르강 급류에서 페네체크족에 의해서 살해당하자 키예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했다. 스바토슬라프의 세 형제중 장자 야로폴크가 정권을 잡았으나 곧 막내인 블라디미르가 정권을 잡고 키예프를 통치했다. 980년경 부터 키예프를 통치하기 시작한 블라디미르는 전임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키예프 루시를 이끌었다. 블라디미르는 1015년까지 키예프 루시를 통치하였는데 그 기간 동안 중요한 발전 몇 가지를 이루었다. 첫째로 블라디미르는 후계자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키예프 루시를 재정비하여 국내 질서를 바로잡았다. 이어서 키예프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동 슬라브족을 다시 굴복시켜 영향력 하에 넣었다. 또한 키예프 루시의 영토를.. 2023. 11. 27. 러시아사 연표 (2023.11.18. 제작) [러시아사] 서론 - 러시아 이전의 러시아에 대하여 [러시아사] - 러시아 이전의 러시아 - 선사시대와 이민족의 침입 [러시아사] - 하자르국 (하자르왕국) [러시아사]- 동슬라브족 (10세기 전후) [러시아사] - 키예프루시의 등장(10세기) [러시아사] - 키예프루시의 확립(10세기-스뱌토슬라프) [러시아사] - 키예프루시의 전성기와 블라디미르 [러시아사] - 키예프의 쇠퇴와 몰락 [러시아사] - 분령시기: 타타르의 멍에 [러시아사] - 분령시기 노브고로드공국 [러시아사] - 모스크바의 등장 [러시아사] - 이반 사후와 쿨리코보 전투 [러시아사] - 몽골의 반격과 러시아의 독립 [러시아사] - 이반 3세와 러시아의 통일 [러시아사] - 러시아 통합이후 대외정벌과 차르 [러시아사] - 이반 3세의 러시.. 2023. 11. 18. 이전 1 2 3 4 5 6 7 ··· 18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