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 - 소비에트 연방과 제 2차 세계대전: 독일의 2차 대공세
1941년 진행된 독일군의 첫번째 공세에 비해서 독일군의 두번째 공세는 범위와 물량이 제한적이었다. 첫번째 공세는 러시아의 혹한에의해 패퇴당했지만, 겨울이 지나가자 1942년 두번째 공세가 시작되었다. 1942년 여름 시작된 독일의 2차 대공세는 보로네시로부터 흑해에 이르는 전선의 남쪽에 걸쳐 진행되었다. 독일군과 추축국의 100개 사단과 100만에 이르는 군대는 전선의 남쪾을 따라 진군했다. 독일군은 케르치 지역을 점령하고 한달간의 포위전 끝에 러시아의 해군요새 세바스토폴을 함락했다. 이어 독일군은 이를 기반으로 동으로는 볼가강 유역, 남으로는 캅카스 쪽을 공격했다. 그러나 보로네시로의 진격이 막히자 독일의 폰 보크는 30만 명이상의 주력군으로 하여금 더 남쪽의 돈 강을 건너 볼가 유역으로 진군시켰다. 8월 말 나치와 추축국 군대는 스탈린그라드에 도달했다.
스탈린그라드는 볼가 강 좌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인구 50만의 공업도시었다. 이 회색 도시에는 요새도 없었고 어떠한 방어적 이점도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 소비에트 적군 추이코프의 62군은 맞은편 강둑에 집결한 포병대의 지원을 받으며 처절하게 싸웠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는 독일군의 온갖 무기와 항공대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침략군이 넘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러시아와 독일군 모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때쯤 히틀러는 군대의 지휘권을 직접 장악하고 독일군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군 지휘부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으로 전선을 지휘했다.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스탈린 그라드를 몇달간 공격했다. 스탈린그라드에는 어떤 전략 목표도, 이점도 없는 곳이었지만 독일군은 몇달을 그곳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수많은 역사가들은 아마도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가 가지는 의미를 노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소비에트 적군의 적극적인 반격으로 독일군이 포위되기 시작했음에도 히틀러는 군대를 후퇴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1943년 1웖 파울루스 원수와 약 12만의 독일군과 루마니아 군은 소비에트에 항복했고, 볼가강을 돌파해 들어가려던 그들의 작전은 완전히 저지되었다. 남쪽전선에서 공격해오던 독일군은 다시한번 로스토프온돈을 점령했고, 캅카스 북부를 휩쓸었다. 또 노보로시스크 항구와 모즈도크의 유전지대와 같은 거점을 장악하고 자원을 획득했다. 그러나 다시 전선은 크게 확대되었고 전략적 목표 획득이 아닌 자원을 위한 전선확대는 다시 독일군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다시 주코프의 러시아 적군은 독일군의 확대된 전선에 반격을 가했고 추축군대는 우크라이나와 크림 지역으로 후퇴해야 했다.
독일군은 1943년 여름에도 러시아에 대해 공격을 시도했다. 그들은 대략 50만명으로 이루어진 40개 기계화 사단을 이용해여 쿠르스크, 오룔, 보로네시의 전략적 분수령에 대해 공격을 단행했다. 7월초 단행한 공격에 독일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엄청난 수의 기갑부대와 포병부대는 일주일 사이 모든 물자를 소진하고 공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를 기다린 소비에트 적군은 다시 반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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